2012년 5월 리드머(rhythmer.net)에 게재된 글

'ㅇㅇ부심'은 앞에 붙는 분야나 개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다는 표현으로, 음악계에서도 이른바 장르부심들이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힙부심과 락부심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유독 많은 마니아층을 보유한 장르이다 보니 이 때문에 심심치 않게 논란이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씬을 지키고자, 장르의 진정성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장르들이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개념이 아닌가 싶다.

현재 한국힙합 씬에서 힙부심은 부정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표현, 몰아내야 할 개념으로 당연시 되어간다. 힙합팬 사이에서 탄생한 이 용어가 무작정 트렌드를 쫓아가는 걸 지양하는 태도를 취하는 이들을 비꼬기 위한 경우에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힙합에 대한 '꼰대적 자세'를 깎아 내리는 의도이다. 힙합에 대한 기본 리스펙(Respect) 없이 인기나 이슈를 끌기 위해 트렌드만 쫓는 경향은 충분히 비판받을만한 것일 테고, 그와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지극히 폐쇄적인 태도들도 당연히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극단적인 자세는 씬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이야 자유이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라는 가정 아래서지 그것이 공론화되거나 다수의 입장이 되어 대세로 기울어진다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선을 지닌 리스너층이 탄탄하게 기반하고 있는 가운데, 다소 한 쪽으로 치우친 마니아층도 존재하는 그림이어야 건강한 씬의 문화가 활성화될 텐데, 양쪽 입장을 가진 이들을 비난하고 매도하는 문화부터 활성화되고 있는 건 현 국내 힙합 씬이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지금은 오히려 힙부심이란 개념 아래서 배척당하는 진정성을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진정 이 씬과 장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라고 종용하는 수가 씬 내에서조차도 적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객관적인 시선 없이 힙부심만 지닌 이들이나 힙합에 대한 리스펙을 지킬 줄 모르는 이들은 어차피 씬의 시스템에 어떠한 발전적인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현재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힙부심을 들먹이며 특정 부류를 비꼬는 게 어차피 소모적인 일일 뿐이라면 말이다.

힙부심이라는 다소 부정적으로 통하고 있는 개념 아래 비아냥 당하는 이들이나,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힙부심 운운하는 이들이나 필요한 의견 나눔이 아닌 서로의 논리를 앞세워 적대시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필요한 건 다소 침체된 장르 씬에 숨을 불어넣는 의미에서의 진정한 리스펙일진데, 그것은 현 리스너들에게 힙부심이라 지칭되고 있는 꼰대 마인드도 아닌, 꼰대 마인드를 배척하는 태도도 아닐 것이다. ‘힙부심 = 꼰대 마인드’라는 생각은 물론, 그동안 역사를 바탕으로 쌓인 힙합의 기본적인 멋과 자세를 찾고자 하는 태도까지 싸잡아서 ‘부정적인 의미의 힙부심’으로 비난받아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