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에게 가해지는 진정성과 깊이에의 강요, ‘Why So Serious?’

by minimalist on Sep 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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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리드머(rhythmer.net)에 게재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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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MIC를 잡은 이상, 그의 랩을 듣는 시간만큼은 사람들이 주의를 돌리지 못할 정도로 휘어잡을 줄 아는 능력을 지녔을 때에 유능한 MC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벌스에 대한 순간장악능력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MC가 자신의 랩을 통해 발화꾼으로서 능력을 선보일 수 있다면 그 내용적인 면은 무얼 취하든 좋을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길 하고, 때론 남이 듣기에 무의미한 얘기더라도 자기에게 의미 있는 스토리라면 얼마든지 자신 있게 해 보일 수 있어야 좋은 MC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힙합의 주된 정신에 반하는 것은, 억지로 꾸며내고 쥐어짜낸 이야기일 것이다.



랩이 무엇을 말하는가는 힙합이 대중적인 장르로서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던 때 중요 화두였다. 그 시대엔 랩의 내용이 시대의 흑인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아주 치열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늘 진지하거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서만은 아니었다. 살벌하게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지만, 그 안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여유로운 생각과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것. 그들 특유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그러한 의미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거리나 파티에서 MC는 자신의 목소리로 여러 담화들을 각자 고유의 스타일과 개성대로 특색있게 풀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MC의 능력을 따질 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보다도 그 이야기를 어떻게 기술하는가에 더 무게가 쏠리는 게 사실이다. 랩의 태생적인 배경을 한 번 생각해보라. 



그런데 때로 너무나도 심각한 국내 힙합 팬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만 집착하곤 한다. 물론, 메시지를 담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리스너들이 MC에게 가하는 '깊이에의 강요'가 폭력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이것이 특정 래퍼의 작법이나 음악관에 대한 비하의 핑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취향을 운운하는 감상 태도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태도는 사실 장르의 발전을 염려하는 태도이다. 예를 들어 '진정성이 없는 가사들만 나온다면, 길게 놓고 봤을 때 장르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얘기들. 이건 바꿔 말하면, 가사가 무겁고 진지한, 한 마디로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성'있는 랩 가사를 쓴다면, 일단 랩퍼로서 자질을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진정성이라는 걸 정의하는 범위가 매우 모호하다는 것과 주제가 다양하지 않거나 스웩(Swag) 관련 가사의 랩, 그리고 그러한 랩을 하는 MC는 일단 평가절하하고 본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러한 리스너들 중 일부는 미 랩퍼들의 음악엔 관대해지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진정 실력자고 힙합을 제대로 체내화시킨 래퍼라면 자연히 묻어나올 수밖에 없는 게 스웩인데, 스웨거 힙합 자체가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야말로 힙합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어떤 사회든 너무 쿨하면 방관의 지점으로 가겠지만, 한국힙합 씬 안에서는 어느 정도 쿨한 시선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심각한 시선들이 간간이 한국힙합에 행하는 난도질 때문이다. 자기과시 가사를 주로 쓰는 걸로 알려진 MC들이라도 늘 동어반복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님에도 그들과 반대 지점의 래퍼들에 비해 쉽게 비판받는다는 게 그 증거다. 물론, 장르 씬을 늘 염두에 두고 감상하며 토론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고 필요한 것이지만, 가끔은 심각한 정도가 허용수치를 넘어선 느낌이 든다. 힙합씬의 자력존속을 위해 가려 들을 때를 구분하고 비판할 때를 가려내는 씬 내의 시선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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