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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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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My Blueberry Nights, 2007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가장 최초의 감상을 말하자면, 그저 무대가 홍콩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것. 홍콩배우가 아닌 미국배우가 나온다는 것. 왕가위는 왕가위라는 것이다.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관계자들의 평은 왕가위가 말랑말랑, 평이해졌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마이블루베리나이츠>는 <2046>같은 전작 등에서 보이던 실험성의 무게를 덜어낸 편안한 영화이다. 그래서 혹자는 <2046>에 쏟아 부은 찬사, 왕가위의 새 시대가 열렸다는 평에 도돌이표 찍듯 돌아선 이 작품이 퇴행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환경과 인물의 향토성만 미국으로 옮긴 감독 본인의 일기, 노트를 훔쳐보는 듯이 느껴졌다. 이 작품이 가장 왕가위 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자주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과연 모두가 늘 끊임없이 새 봉우리를 틔워내고 질주해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엔 아주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관조하며 머무름으로써 삶을 깨닫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중경삼림>이라는 감독의 지워낼 수 없는 옛 대표작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홍콩의 외로움과 미국의 외로움이 주는 무드가 달랐을 뿐이다. 외로움, 사랑, 슬픔, 몽환적인, 낭만적인. 도시적인 무드에서 컨트리적인 느낌을 잡아내는 재주는 여전히 영화 내내 아련하도록 감각적이게 살아있다.   



다시 저 의문을 가져오고 싶다. 과연 사람은 늘 끊임없이 새 잎을 피워내고 점프하고 뛰어야만 하는 것일까. 가끔은 천천히 걸을 수 있다. 그러는 게 옳은 것 같다 여겨질 때가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옳음에 대한 치우침이 시시각각 변하기도 한다. 그럼에 나는 한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 결론내리지 않기로 한다. 나는 이 영화가 아주 흡족스럽다. 내가 기대했던 분위기를 훨씬 고독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럼 된 거다. <2046>의 건조함과 서늘함에도 경의를 표했던 전적이 있지만, 이건 더 가까운 호의다. 나는 이 영화에게 흠씬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렸을 적 <중경삼림>을 보고 막연하게 홍콩을 동경했던 나는 커서 <마이블루베리나이츠>를 보고 뉴욕의 카페에 들어가 블루베리 파이를 먹고 싶어진다. 꼭 내가 툭하면 감상에 잘 빠지는 나이이고, 노라존스의 몇몇 노래를 좋아하고, 블루베리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이 영화엔 분명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순수하며 간결하고 왠지 모르게 흥겨워 웃음이 나는 컨트리 재즈를 들으며 어찌 마음이 모날 수 있겠나. 왕가위의 미국 노트는 이랬다. 그의 블루베리향이 나는 노트의 한 페이지를 훔쳐보는 즐거움은 세상의 그 어떤 유희과도 비견할 수 없는 만족을 선사한다.


 


 


사실 왕가위의 영화를 꼬집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런 감독이 몇 명 있다. 그 감독들의 작품에 대한 평은 지극히 존경심이 담긴 감상문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캐스팅과 OST마저 흡족해서 이거 원.... 예전에 캐스팅정보를 보고 레이첼 와이즈라는 배우가 누군지 긴가민가했었단 말이다. 콘스탄틴에 나온 그 배우였다. 포스터 중에 크게 얼굴이 나온 그 배우라곤 생각도 못했다. 목소리가 정말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연기를 잘할 줄이야. 어니 역의 데이빗 스트래던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나탈리 포트만도 역시 좋았지만. 레이첼 와이즈에게서 받은 깊은 인상은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아, 노라존스가 생각보다 연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잘해서 놀라기도 했다. 명감독은 좋은 배우를 감지해내는 능력을 타고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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