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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성장드라마 (여름궁전, 몽상가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9년 7월에 쓴 글
20대의 성장드라마
“20대의 성장기”라는 범주의 멜로드라마로 <여름 궁전>(2006 로우 예), <몽상가들>(200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이누도 잇신)을 텍스트로 다루었고, 캐릭터&이데올로기적 각 작품 분석/작품에 나타난 멜로드라마의 관습-공통점&차이점을 한데 묶어 분석해보았습니다.
*여름 궁전 Summer Palace
<여름 궁전>은 불안하고 나지막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여주인공 유홍의 일기로 시작된다. 어느 때인지 명시돼있지 않은 발췌 부분은, 20대의 일기 중 어느 부분을 떼어놓고 보아도 있을법한 구절이다. 유홍은 중국 투먼의 시골지역에서 북경의 대학에 합격해 북경으로 상경한다. 도시 대학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설레긴 했지만, 투먼에 떨어져있는 남자친구와 사교성 없는 무뚝뚝한 성격 탓에 대인관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실연당해서 정신이 나간 애, 왕따, 동성연애자’등의 평판을 듣는다. 즐거운 도시&대학생활은 유홍에게 있어 잠깐의 기대였을 뿐, 그저 그런 여자애들과 손잡고 다니며 쇼핑하고 도서관 다니는 평범한 여대생으로서의 즐거움은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 아니라는 걸 유홍은 알고 있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유홍의 시큰둥한 나날에 리티가 들어온다. 리티는 소문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밤에 복도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유홍에게 자연스레 다가서고, 북경의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었던 유홍도 아주 자연스레 리티를 받아들인다. 기숙사 룸메이트를 대할 때와 리티와 있을 때의 유홍은 표정부터 다르다. 자유분방한 영문과생에, 독일 유학생 남자친구를 둔 리티는 유홍이 원하던 그런 친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리티의 남자친구 루오구와 만난 날 같은 북청대생 저오웨이를 소개받는다. 이 네 명의 주요인물들이 처음 다 같이 만나 서양식 술집에 간 부분에서부터 영화는 천안문사태가 일어날 즈음의 중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투먼에서의 초반부부터 리티와 만나기 전까진 남자친구와 있을 때도 밝지 않은 표정이었던 유홍이, 혼자 바 스툴에 앉아 저오웨이와 자꾸 시선이 얽히자 씩 웃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하나의 신호처럼 보인다. 유홍의 20대, 청춘기의 진짜 시작을 알리는 지점 말이다. 그런 유홍에게 저오웨이가 다가오는 것은 아주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뒤이어 나오는 나레이션 씬은 저오웨이와의 운명적인 이끌림을 담담하게 정리한다. 유홍은 혼자 빈 수영장터에서 일기를 쓰며 저오웨이에 대한 감정을, 급변하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만 사랑에 대한 두려움도 느낀다. 이처럼 적절히 나오는 유홍의 일기, 나레이션의 조용하고 고독한 분위기는 이 영화가 청춘에 대해 묘사하는 주요한 방식이다. 또 하나의 방식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섹스 씬들이다.
추리닝을 입고 다녀도 멋있고 옆구리에 책을 몇 권씩 끼고 다니는 문학청년 저오웨이는, 유홍이 ‘꿈꿔왔던 바로 그 남자’다. 저오웨이와의 첫 관계 후, 유홍은 마치 평생 그를 기다린 것 같다고,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되뇐다. 그를 사랑할수록 유홍은 두려움을 느끼고, 그럴수록 더욱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싶어 한다. 강렬하기에 불안한 사랑의 ‘열정’ 자체가 유홍이 자신의 삶에서 원하던 궁극적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적인 사랑 뒤에 오는 균열은 그 뜨거움만큼 차갑다. 유홍과 저오웨이는 영화 내에서 대화를 별로 주고받지 않는다. 정적 속에서 오가는 눈빛과 섹스만으로 둘의 관계가 묘사되다가, 균열이 일기 시작하고부턴 소통이라고도 할 수 없는 단 몇 마디의 대화들이 나온다. 스스로 열정의 한가운데 뛰어들기 원했던, 사회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청춘기를 맞은 그들은 대화로는 전혀 소통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아직은 미숙한 개인성을 통제하기도 힘든 그들이 서로를 뜨겁게 껴안을 수 있는 건 인생에서 찰나의 순간이었다.
저오웨이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유홍을 위로하는 리티는 영화 내에서 가장 다변적인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리티라는 캐릭터의 불안성이 영화의 한 흐름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모든 인물과 사회적 저변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 혼란의 가운데서 유홍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로움에 시달리고, 북청대생들은 천안문 광장으로 몰려가 민주화 혁명의 구호를 외친다. 함께 혁명의 노래를 부르면서 유홍과 저오웨이는 감정을 뒤로하고 즐거이 어울리기도 한다. 유홍, 저오웨이, 리티가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밤길을 되돌아오다 점점 데면데면해지는 장면은 이후 셋의 엇갈린 운명을 암시한다. 혁명 이후로 리티는 저오웨이에 대한 감정을 이전처럼 숨기지 못한다. 저오웨이도 그런 리티를 조금의 거부도 없이 안는 걸 보고 관객은 어이없을 수 있다. 리티와 저오웨이가 서로를 안는 순간엔 어떠한 사회의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거스르고픈 욕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친구의 연인들인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안을 수 있었을까. 기존의 정치적 질서에 반기를 드는 혁명을 겪고 나서 그랬다는 것도 수평적 배치로 보인다. 말이 되나 싶은 관계이지만, 그들의 감정선에서 생각하면 혁명의 기운이 감정의 영역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도식이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서로를 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물론이고 유홍에게도 시대의 혁명이 각자 운명에 절망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찾아온 투먼의 남자친구 앞에서 오열하며 몸부림치는 유홍을 보며 혁명이 지극히 작은 개인, 미숙한 청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혁명은, 껴안지 않아야할 이들을 껴안게 했고, 껴안아야할 이들이 서로를 놓치게 만들었다. 그 가운데 위태롭게나마 지속된 것은 리티와 루오구의 연인관계다. 루오구는 저오웨이와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남자다. 점잖은 외모와 성격을 지녔고, 늘 말없이 든든한 몸짓으로 리티를 안아준다. 어찌 보면 가장 불안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리티는 나중에도 계속 저오웨이와의 관계를 놓지 못하면서도,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루오구와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혁명은 실패한다. 천안문사태가 실패한 혁명이기에 그것을 모태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 영화가 혁명 속 인물들의 운명을 너무도 생생히 그려낸 덕에 어느 순간부턴 이 허구적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보다 우선한 것처럼 생각된다. 격변하는 사회문화적 소용돌이에서 그들의 청춘은 허망하게 끝난 혁명만큼이나 덧없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결국은 사회에서 부유(浮游)하는 층으로 남거나, 아예 중국사회 바깥으로 떨어져나간다. 실패한 정치혁명을 위로라도 하듯 리티는 국외에서도 저오웨이와 몰래 관계의 혁명을 이어나가다, 어떠한 비극도 희극도 아닌 자연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자살한다. 영화의 어떤 부분들은 갑작스럽고 즉흥적이며 표면적으론 그다지 당위성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곧, 이해하게 된다. 그 갭이 분명히 존재는 하지만 아주 짧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러다보면 그런 부분들은 ‘자연스러웠다’고 기억되어진다. 물론 전체내용상으로 보면 이 영화는 비극이다. 12년이란 세월이 흐르고서야 유홍과 저오웨이가 재회한 씬은 사실 이 영화의 대부분이 그렇긴 했지만, 남루하기 그지없다. 희극적인 부분은 그들이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고, 사랑을 나눈 잠깐의 풍경들뿐이다. 그러나 그 부분조차도 비극에 대한 복선으로 읽힌다. 혁명의 실패감으로 인해 덜 여문 청춘의 시기에서 성장을 거세당한 듯, 단지 혁명에 관한 몇 마디로 회자되었던 그 시기의 청춘들이 이렇게 잘려나가고 낙오해갔었다고, 이 영화는 이제야 말하고 있다. 이 뒤늦은 보여주기조차 중국내에서 상영금지 당했지만 말이다.
*몽상가들 The Dreamers
매튜는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러 파리에 온 유학생이다. 당시 파리는 정부의 문화제약에 반기를 든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었다. 영화매체의 자율성을 상징하는 시네마테크를 사수하고자, 젊은 영화학도들은 영화 속을 빠져나와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이것이 유럽전역에 영향을 끼친 최초의 문화와 정치의 결합혁명이자 천안문사태와 마찬가지로 ‘실패한’ 혁명인, 68혁명이다. 그 혼란의 가운데 매튜는 영화광 남매 이사벨과 테오를 만난다. 그러나 혁명의 배경은 처음, 그들의 첫 만남을 위한 부분과 결말부에만 도구처럼 쓰일 뿐이다. 영화는 이방인인 매튜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의 가치관과 눈높이에서 생경한 라이프스타일의 이사벨&테오 남매에게 매튜가 영화를 매개로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사벨과 테오가 보기에 깔끔하고 점잖고 조용한 매튜도, 그리 평범한 청춘은 아니다. 그렇기에 예측불허의 행동을 일삼는 그들과 어울리게 되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남매의 집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가서 매튜는 테오와 시인 아버지의 정치사회적인 의견충돌을 본다. 테오는 단도직입적으로 아버지의 비판자, 방관자적 삶에 반감을 나타내고,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한다. 테오의 이런 단호하고 고집스런 성격은 그의 용모를 통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검은 고수머리에 게슴츠레하지만 날카로운 눈과 꾹 다문 입, 전체적으로 짙고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에 검은 터틀넥 티와 청바지 차림의 테오. 하늘색 눈동자, 창백한 피부에 섬세한 이목구비, 가느다랄 것 같은 금발머리를 단정하게 넘기고 흰 셔츠와 얇은 넥타이, 옅은 브라운톤의 세미정장차림을 한 매튜와는 용모부터 대비되는 특징을 지녔다.
테오가 매튜를 안내한 방에는 혁명의 여신의 얼굴에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 오려 붙여있다. 그들 세대에 있어 그들이 믿고 따르고픈 신은 고리타분한 가르침을 설파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는 그들의 성서인 셈이다. 테오와 이사벨은 성서대로 살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삶이 성서와 닮아있음을 믿기 위해 상황마다 들어맞는 영화제목 맞추기 게임을 하고, 끊임없이 영화 속 장면들을 따라한다. 마르크스를 읽었는지 같은 사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동지로 받아들이듯,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영화의 장면을 따라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이사벨&테오 남매는 매튜를 동지로 받아들인다. 그들끼리 남겨진 집에서 매튜는 두 남매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행동과 성격에 처음엔 당혹스러움을 느끼지만 그래서 그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테오의 방은 모택동의 전시장이기도 하면서 여배우의 사진이 붙어있고, 셋이 모여 레코드를 듣고 영화제목 맞추기 게임을 하는 공간, 부모가 떠난 집안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서 테오는 매튜에게 퀴즈를 내고, 맞추지 못한 매튜에게 벌칙을 내린다.
테오는 악귀를 쫓아내는 성직자처럼, 고리타분한 사상을 가진 이들을 처단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신 앞에서 이사벨과 사랑을 나누라는 벌칙은, 이사벨과 자신의 사이를 이해할 수 없어하는 매튜의 가치관을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고, 관습적인 사고로 자신 남매의 관계를 판단한 매튜에 대한 일침이기도 할 것이다. 이사벨과 관계 후 그녀가 처녀임을 알고 ‘널 처음 보았을 때 마치 넌 영화배우 같았다’며 매튜는 간증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테오와의 관계를 알게 되면 어쩔 거냐는 현실적 추궁을 한다. 테오는 언제나 자신 안에 있다는 몽상적 대답을 일삼던 이사벨은 그 질문에 죽어버리겠다고 대답한다.
영화 중반부부터 관객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매튜의 캐릭터가 아니다. 매튜에게 계속해서 친밀함을 표현하는 이사벨도 매튜와의 관계 속에선 점점 흥미로운 존재감을 잃는다. 정도를 넘지 않는 일정선의 감정을 밟는 매튜에게, 알듯 말듯 한 거리조절을 보이다 이사벨과 매튜가 관계를 맺은 후엔 확실한 거리감을 두는 테오의 캐릭터이다. 테오와 매튜의 대립선이 중후반부에선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된다. 이사벨을 사이에 두고 성장을 유예시킬 뿐인 테오와, 정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하는 매튜의 갭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사벨이 처음으로 테오 이외의 남자와 데이트를 하며 성장의 문턱을 밟고, 그런 이사벨과 매튜를 지켜보는 것이 테오에게는 성장통인 것이다. 강한 혁명주의자이고, 밀실 바깥으로 나가기만해도 혁명이라는 현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혁명보다 성전에서의 상황에 정신이 팔려있던 테오는 자신과 다르게 이사벨을 대하는 매튜를 보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고, 매튜를 자신의 방으로 들이며 정식적인 성장의 문턱을 잘 밟아가는 것 같던 이사벨은 테오와 다른 여자의 관계를 정작 목격하자 상처받고, 다시 스스로의 성장을 꺾어버린다.
그리고 테오는 다시 혁명에 대해 읊기 시작한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단호한 혁명을. 성장했으므로 이제 다시 혁명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은 각자의 방에서 잠시간 무언가를 생각한다. 영화 내에서 처음으로, 테오가 혁명에 관해 매튜에게 얘기한다. 매튜는 테오가 말하는 혁명의 동질감이 이사벨, 나아가 밀실 성전에 한정되어있었음을 꼬집는다. 그들이 그런 대화를 할 동안, 그들의 영화배우 이사벨은 더 은밀한 밀실을 만들었고 그들은 다시 그 안에 갇힌다. 그 속에서 이사벨이 테오에게 말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사벨이 테오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놀라울 것이 없지만 그것이 영화 내에서 첫 진지한 발언이라는 것은 뜻밖이다. 부모님에게 들킨 것을 알고 영화적 제의를 지내듯 이사벨이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영화는 강렬한 현실로서의 혁명으로 하여금 성전 안에서 성스러운 제의를 지내던 그들을 급작스럽게 흔들어 깨우게 한다. 헐벗고 있던 그들이 옷을 차려 입고 집을 뛰쳐나가 혁명의 행렬에 끼어 구호를 외치고, 어지러운 거리에서 서로의 손을 찾아 잡는다. 넌 성장하지 않을 거라 테오에게 말했던 현실적인 매튜는 무리로부터 돌아서고, 미성숙하리만치 지독한 몽상가들인 테오는 무장한 경찰을 도발하는 선봉에 선다. 이사벨은 당연히 테오의 손을 잡았고, 돌아선 그들은 서로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는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혁명은 결국 몽상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 꿈이 곧 실패로 끝났을지라도, 멀리 와서 68혁명의 의미는 결과 자체로 매겨지지 않는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Josee, Tiger and The Fish
츠네오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적당히 비도덕적이고 또 악하지는 못해서 그때그때 적당히 대처하는 것에 충실해 살아가는 젊은이다. 모든 상황이 그럭저럭 츠네오가 느물느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선에서 일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츠네오에게 대처매뉴얼이 없는 예상 밖의 상황이 눈앞에 떨어진다. 유모차 안에 탄 것에 대해 생각 없이 능글맞게 맞받아쳤던 츠네오지만, 막상 그것이 눈앞에 떨어지자 긴장한다. 그 우연한 마주침을 계기로 츠네오는 할머니와 걷지 못하는 쿠미코의 사연에 말려들게 된다. 그저 대처심이 발동해 츠네오가 쿠미코에게 계란말이가 맛있다며 말을 건넸는데, 가만있을 줄 알았던 쿠미코가 의외로 톡톡 쏘는 대답으로 응수해온다. 그리고 그뿐, 츠네오에겐 귀여운 관심녀와 섹스메이트 동기 등 집중해야할 현실이 있다. 영화에서 츠네오와 쿠미코의 관계가 형성되는 첫 지점은, 츠네오가 두 번째로 쿠미코네의 집을 찾은 때이다. 그때 그가 문을 한번만 두드리고 떠났더라면, 누구에게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채 츠네오는 츠네오대로의 현실에서, 쿠미코는 쿠미코대로의 작은 세상에서 이제껏 그래왔듯 살아갔을 것이다. 츠네오의 두드림은 비록 인간적인 사소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지만, 걷지 못해 작은 집안에서 외로이 갇혀 살고 기껏해야 짐덩이처럼 둘둘말아져 동네구경만 할 수 있는 쿠미코에겐 세계가 뒤흔들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가 말하면 기억하고 관심녀에게 작업수단으로 써먹기도 하는 등 츠네오에게 있어 쿠미코의 사연은 일상에서 조금 튀는 에피소드에 불과했지만, 그 파장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을 묻고, 쿠미코는 츠네오의 조제가 된다. 빠른 속도로, 대낮에, 조제는 츠네오가 구경시켜주는 동네를 만끽한다. 조제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 츠네오가 그것이다. 할머니가 조제를 나무라며 ‘주제를 알아야지, 몸도 불편한데 조심하고 살아야지’라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른 세상과 엮여 결국 상처받는 것은 조제이기 때문이다. 조제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츠네오에게 연락을 취해 만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그저 츠네오의 친절에 나름의 방식으로 응수하는 수동적인 입장이다. 먼저 손을 잡은 것도, 상처를 준 것도 츠네오다. 자신을 밀어내는 조제 때문에 비를 맞으며 잠깐 서있고 나면 된다. 예쁜 여자친구와 취업이라는 현실에 츠네오는 조제를 잊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츠네오는 조제를 계속해서 기억한다. 자신이 꼭 원해서는 아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순간순간 연상된다. 결정적인 상기의 순간에, 애써 잊었는데 다시 생각났다고 소리치지만 사실 츠네오의 도처에 조제가 있었던 것이다. 조제는 몇 겹의 캐릭터다.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처지의 조제이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그다지 적극적일 기회가 없었던 츠네오에게 있어 능동적인 대상으로 작용한 것이다. 마침 할머니가 죽었다는 얘기까지 듣고 나자 츠네오는 망설일 필요가 없어진다.
개인적인 사족을 하나 달자면, 가란다고 정말 가려는 츠네오를 조제가 붙잡는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해보지만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습성을 아직은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생각에 결국 츠네오는 가지 않거나 또 돌아왔을 거 같은데, 어째서 조제가 필사적으로 잡는 것처럼 표현되었는지, 그저 순수한 조제이고 누군가가 있으면 좋을 상황이긴 한데 가장 바랐던 츠네오가 왔기에 그랬던 건지. 아마도 조제는 아닌 척하지만 기다렸을 텐데. 가지 말라고 해야 안 가는 츠네오가, 온 것도 너무 늦게 온 것 같아 야속하게 느껴졌다. 손을 잡지나 말던가. 어쨌든 필연적으로 그들이 연인이 되었다 해도, 그 관계 속에서 조제가 행복을 느껴보았다 해도, 결론적으로 또 츠네오는 떠나지 않는가. 그러나 츠네오의 인생에서 멀리 보면, 조제와 보냈던 시간이 외도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럴 것이다. 츠네오는 잠깐이나마 정말 착한 청년으로 기억될만한 기록을 하나쯤은 만든 것이다. 그가 조제를 떠난 것을 질타할 수 없다. 영화를 본 모두가 그것을 안다. 본인이 조제와 비슷한 입장이거나 그런 가족을 두었다면 또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럭저럭 수완 좋게 대처해내며 살고, 자주자주 흐릿해지곤 하는 책임감이나 이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영화 속 조제에 아무리 이입되었더라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츠네오를 이해할 수 있다. 이해되는 수준의 결론, 사회는 그것을 현실적이라 말하는 듯하다.
이제 서서히 청춘을 지나 양복을 입고 비즈니스를 보러 다니는 츠네오에게, 직장상사가 남의 말만 따르는 허수아비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를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할 말은 하는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 속에서,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성장이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음가는대로 들인 발을 빼고 싶어졌을 때, 혹은 빼야할 때 뺄 줄도 아는 것, 그리고 진짜의 다음 발을 디디는 게 사회로 진입하는 20대의 성장법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그러한 현실적인 성장법을 얘기하고 있다곤 생각지 않는다. 도입부에서 츠네오의 독백으로 그가 조제에게 다시 돌아갔다고 읽을 수도 있지만,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다. 츠네오와 조제가 서로를 자신의 세상에 들이고, 서로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그 과정, 그리고 츠네오가 조제를 사랑한 방법, 그들의 여행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 영화를 읽는 것은 족하다.
*멜로드라마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세계와 나와의 구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혼자만의 ‘나’보다 훨씬 더 완전하고 견고한 ‘나’이다. 그런 사랑을 하고, 사랑의 견고함이 사정없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모든 과정은 성장드라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을 묘사하는 것은 사람의 성장을 묘사하는 것이며, 삶을 묘사하는 것’이다. 어느 영화든지 삶의 단면을 묘사하고 있지 않겠냐마는, 삶의 속성을 역사서술이나 전기도 아닌 사랑얘기하나로 모두 건드려볼 수도 있다는 건, 멜로드라마가 가진 강점이다.
예전 멜로드라마들에 비해 많이 그렇게 되었고, 요즘의 작품 중에도 작품성 높다는 평을 들으려면 사랑의 육하원칙 중에 ‘어떻게’와 ‘왜’를 잘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점은 모두 당위성이 떨어지더라도 적어도 멜로드라마라면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당위성 있게 이해되어야 통속을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텍스트로 삼을 작품들로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점점 ‘통속적인 멜로’의 개념이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정한 주제는 더욱이나 불안한 청춘에 관한 것이어서 당위성에대해 따지다보면 멍해지는 작품들이 있었다. 같은 또래의 청춘인 나조차도 한번은 더 생각해봐야 가닥이 잡히는 캐릭터들은 정말 나를 힘들게 했다. 그건 청춘멜로드라마의 어드밴티지이기도 하다. 다소 당위성이 떨어지더라도 그 점이 통속으로 직결되진 않기 때문이다.
<여름 궁전>의 세 주요 인물들은 아주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본인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며 마음상태가 시시때때로 변한다. 사실 멜로적 요소도, 그들이 사랑하여 서로를 안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중요한 건 감정의 정도보다 끝내 감정이 향하는 방향과 길이다. 그들이 열정적으로 사랑한 순간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바로 작품의 정수이고, 그 순간만큼은 멜로적 요소가 분명히 작용한다. 소개받은 것이지만 시끄러운 인파속에서 서로를 느끼고 찾아내고, 나중에서지만 유홍은 처음 본 순간부터 저오웨이가 자기 인생의 남자임을 느꼈다고 진술한다.
<몽상가들>에서는 우연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매튜는 아름다운 이사벨을 본 순간 반해버렸다. 그래서 이사벨과 그의 오빠인 테오에게 홀린 듯 기쁘게 끌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매튜가 이사벨, 테오와 같은 영화광이라는 것 또한 우연성에 기대지만, 이건 청춘의 당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영화란 모든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반하는 또 다른 새로운 것, 청춘성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청춘영화는 ‘청춘이니까’라는 핑계 하나면 모든 게 이해되므로 당위성이니 통속성이니 하는 것에 대해 깊게 따지고 드는 식의 피드백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진짜 만들기 까다로운 게 청춘드라마인지도 모르겠다. 관객이 ‘청춘이니까’카드를 끊임없이 들어줄 수 있을 만큼의 매력적인 배경과 서사에 캐릭터가 존재해야하기 때문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가 조제에게 다가가는 것, 서로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밀어내는 방식, 그리고 다시 다가선 츠네오를 조제가 잡는 것, 그렇게 함께하게 된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 모두가 미숙하고 어설프다. 츠네오가 조제를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아직은 미숙한 성장기 안에 있기 때문이다. 더 약았다면 그렇게 떠나지도 못했을 거다. 그들은 많은 것을 뛰어넘어 사랑하게 되었지만, 모든 장애물을 함께 넘어서진 못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결말이 왜 중요한지 알겠다. 관계의 맺음과 사랑의 과정이 주는 아름다움만 기억하려했던 것은 너무 미성숙한 감상론인 것 같다. 사랑의 시작과 끝까지 모든 과정을 다 겪고, 조제는 홀로 남겨져 있지만 홀로 나갈 수도 있게 되었다. 지극히 도식적이고 분석적인 깨달음인 것 같아 멀리하려했던 내가 유아적으로 느껴진다. 시시때때로 견해가 변한 것은 내용이 다루고 있는 청춘성의 특징이, 이 글의 형식에 영향을 끼친 까닭일 것이다.
-참고-
여름 궁전 ‘시대를 이겨내는 미칠 듯한 사랑, 그리고 10년 뒤’ 안시환,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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